“아야!” 세 살배기 아들 녀석이 장난으로 휘두르는 주먹의 하필 눈을 맞았다. 게다가 내 팔다리를 물어 살에 이 자국이 선명하다. 며칠 전부터 아들이 잘 때 식은땀을 많이 흘려 병원에 데려갔더니 편도가 많이 부었단다. 목이 탱탱 부어 힘들다 보니 엄마인 내게 분풀이한 모양이다.
며칠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저릿하고 미안하기까지 했다. 아이가 나에게 남긴 상처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어서 낫게 해 달라고 빌어 본다. 집으로 돌아와 잠든 아이를 보자니 문득 십 년 전 세상을 떠난 아빠 얼굴이 떠오른다. 아빠도 아기처럼 새근새근 누워 있었는데…‥.
아빠는 나이를 거꾸로 먹어 점점 아기가 되어 갔다. 밥 먹는 일부터 옷 갈아입기, 심지어 씻는 일까지 혼자 할 수 없었다. 뇌병변이 발병하면서 아빠는 자주 토했다. 뇌가 제 기능을 못해 본인도 모르게 토하는 거라는 의사 말에 덜컥 겁났다. 가족으로서 뒷감당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빠가 갑자기 토해 집안 살림이 더렵혀지곤 했다. 곳곳에 냄새도 배었다. 가장 난감했던 건 엄마가 없을 때였다. 딸인 내가 목욕을 시켜야 했다. 20대 초반이었고 결혼도 안 했던지라 꽤 부담스러웠다.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차마 보고 있을 수 없어 인상을 찌푸리며 씻겨 준 적이 여러 번이었다.
어느 날, 아빠가 또 누워서 토하는 바람에 옷이며 이불이 엉망이었다. 하지만 난 그 광경을 못 본 체하고 문을 닫아 버렸다. 그러곤 밖에서 볼일을 보다 엄마가 돌아올 무렵 시치미를 뚝 떼고 집에 갔다. 안방 문을 연 엄마가 놀라며 언제 토했느냐고 나를 다그쳤다. “넌 언제 나갔어? 몇 시간 된 것 같은데!” 난 분명 외출 전엔 안 그랬다며 둘러댔고 아빠는 원망의 눈빛을 보내기는커녕 오히려 웃으며 내 거짓말에 맞장구쳐 주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방을 나왔다. 아픈 부모 모른 척한 자식을 탓하지 않고 감싸 주는 아빠를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튿날 아빠는 폐렴이 발병해 입원했다. 점점 다리가 굳고 몸이 야위어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몇 년 동안 누워 지냈다. 그 전에는 누군가 도와주면 거동할 수 있었지만 이젠 부축조차 소용없었다. ‘그날 내가 외면하지 않고 토한 아빠를 씻겨 주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토사물이 기도로 넘어가지 않았다면 폐렴에 걸리지 않았을 테지…‥.’ 평소처럼 나중에 씻겨도 될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게 두고두고 후회될지 꿈에도 몰랐다.
그 뒤로 나는 죄책감에 아빠 얼굴을 일부러 피했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오히려 미안하다는 듯 멋쩍게 웃던 아빠. 차라리 욕이라도 하지. 못된 자식이라고. ‘죄책감으로 나를 더 괴롭게 만들려고 그러나?’라고 원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눈감는 순간까지 아빠는 미소만 지어 주었다.
아픈 아이를 보며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자 아빠가 왜 나를 감싸 주었는지, 왜 되레 미안해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아마 당신의 병세로 딸이 힘들어할까 마음 졸였으리라.
“아빠! 눈감는 순간에서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한다고 말한 철부지 딸에게 준 사랑. 지금까지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빠에게 받았던 마음을 이젠 아들에게 베풀려고 합니다. 부모로서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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