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영화가 연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클까요?
영화는 현실을 모방하고, 현실은 영화를 모방한다는 걸 그녀는 자주 공감합니다.
연애에 서툴렀던 그 시절, 그녀는 그와 함께 〈냉정과 열정 사이〉를 보았습니다. 서른 살 생일을 맞이할 때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는 그 커플이 부러웠습니다. 그때 그가 말했었죠.
“우리가 어디에 있더라도, 계속 만나고 있더라도 혹은 아니더라도, 나는 네가 서른 살 생일을 맞이하는 날 너를 찾아갈 거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사랑의 약속이란
지키지 못할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 약속을 하는 순간만큼은 진심이라는 것을
그녀는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다
지켜지리라고 생각할 만큼
순진하지는 않았죠.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와 헤어지고 직장 때문에 먼 곳으로 이사 온 지 3년. 낯선 곳에서 맞이하는 서른 살 생일은 참 쓸쓸했습니다. 오래전에 했던 그와의 약속을 떠올려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건 영화 속에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이가 서른이나 되었으니 생일 같은 건 잊은 것처럼 담담하게 하루를 보내리라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그의 생일을 모르는 것도 다행이었고, 야근을 해야 하는 것 역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죠.
야근을 마치고 열한 시가 넘어서 귀가한 그녀는 집 앞에 세워놓은 그녀의 차에 꽃 한 다발이 놓여 있는 걸 보았습니다. 가슴에서 쿵, 산사태가 일어났습니다. 누가 가져다놓은 것인지 확인도 하기 전에 이미 가슴이 쿵쾅거렸죠.
꽃다발을 들어서 그리운 그 사람을 바라보듯 하다가 그녀는 갑자기 차문을 열고 들어가 블랙박스를 확인해보았습니다. 그가, 그리운 그가 저녁 내내 꽃다발을 안고 집 근처를 서성거리다가 본네트 위에 꽃다발을 내려놓고 돌아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가로등을 받아 어렴풋한 실루엣만 보이는 그의 모습을 그녀는 보고 또 보았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녀는 꽃다발을 끌어당겨 향기를 맡아보았습니다.
이 먼 곳까지 다녀간 그의 마음이 고마웠고,
언제 끝났는지도 알 수 없는 그들의 사랑에
꽃다발이 마침표가 되었다는 것도 축복 같았고,
얼마든지 만날 수 있고 전화할 수 있는데도
그저 꽃다발 하나 두고 간 그가 고마웠습니다.
서로에게 완벽하게 내어주었던 청춘이 꽃처럼 아름다웠다고 기억하게 해줘서 고마웠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서른 이후의 인생에 어떤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이 꽃다발은 그녀의 지나간 30년을 축하하는 꽃다발이며,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향한 축복의 꽃다발일 거라고 그녀는 생각합니다.
그라면, 그녀가 청춘을 바쳐 사랑했던 그라면 충분히 그럴 거라고 믿습니다. 비록 그것이 사랑이 만든 오해라 할지라도 말이지요.
 /
|
Home > 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